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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 직장의 야근이 잦아지던 시절,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었을 때 당화혈색소 수치가 6.1%를 찍고 있었습니다. 당뇨는 아니라는 의사 말에 안심했지만, 제 몸은 이미 가려움증과 만성 피로로 조금씩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염증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염증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통념이 얼마나 위험한 오해인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선천면역과 염증, 우리 몸을 지키는 소방관의 정체
염증을 없애야 건강해진다는 말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면역 시스템을 조금 들여다보면 이 생각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몸속 염증을 100% 제거하면 그 사람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염증은 우리 몸이 외부 침입자와 싸운 흔적이자, 싸움에서 이겼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면역 시스템은 크게 선천면역(innate immunity)과 후천면역(adaptive immunity)으로 나뉩니다. 여기서 선천면역이란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방어 시스템으로, 대식세포와 호중구(neutrophil)가 핵심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들은 침입자를 보는 순간 즉각 반응합니다. 관상을 보고 싸우는 격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이지만, 실제로 이 세포들은 학습 없이도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알아보고 공격합니다.
문제는 이 선천면역이 작동하는 방식이 굉장히 과격하다는 점입니다. 불난 건물에 출동한 소방관이 주변 피해는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물부터 뿌리는 것처럼, 호중구는 목표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주변 조직도 함께 손상시킵니다. 고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호중구(neutrophil)는 세균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 수명이 하루 이틀에 불과한 면역 세포인데, 그 시체가 모인 것이 고름입니다. 쉽게 말해 고름은 패배한 세균과 함께 전사한 백혈구의 흔적입니다.
한편 후천면역은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가 적의 정보를 림프구에 전달하고, 림프구가 스나이퍼처럼 정확히 표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백신이 바로 이 후천면역을 훈련시키는 원리입니다. 다만, 후천면역 과정에서도 선천면역계가 일부 개입하기 때문에 백신 접종 후 발열이나 부위 통증이 생기는 것은 정상적인 염증 반응입니다. "후천면역에선 염증이 전혀 없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은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성 염증이 무서운 이유, 착한 의도가 장기를 망가뜨린다
급성 염증은 싸우고 끝납니다. 무릎이 까지면 며칠 후 낫는 것처럼요.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진짜 문제는 조용히 오래가는 만성 염증이었습니다. 가랑비에 속옷이 젖는 것처럼, 내가 버틸 만하다고 느끼는 동안 장기가 조금씩 손상되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맥경화증입니다. 고열량 식단과 고혈압이 맞물리면 혈관벽에 미세한 손상이 생기고, 혈액 속을 떠돌던 LDL 콜레스테롤이 그 틈으로 파고듭니다. 혈관벽 안에 자리 잡은 대식세포는 침입자를 잡아먹으려 하지만, LDL이 계속 유입되면 처리가 한계에 이르고 결국 세포가 터집니다. 그 잔해가 혈관벽에 쌓이는 것이 동맥경화증(atherosclerosis)의 정체입니다. 쉽게 말해 혈관 청소부가 쓰레기를 못 다 치우고 쓰러진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지방간도 같은 원리로 설명됩니다. 간이 처리하지 못한 지방이 간세포 안에 쌓이고, 결국 세포가 터지면서 인근 면역세포가 이를 외부 침입으로 오인해 공격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성 간염은 간경화,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과정에서 면역세포 자체는 정해진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의도는 착했지만 결과가 나빠진 것이죠.
치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경세포가 일하면서 생긴 단백질 찌꺼기, 즉 아밀로이드(amyloid)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뇌 면역세포가 이를 제거하려다 주변 신경세포까지 손상시킵니다. 아밀로이드란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못한 단백질 덩어리로, 물에 녹지 않아 뇌에 침착되는 물질입니다. 만성 염증이 이 과정을 가속화한다는 연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 동맥경화증: LDL 콜레스테롤과 대식세포의 만성 염증 반응이 혈관벽을 막음
- 지방간 → 간경화 → 간암: 처리되지 못한 지방이 간세포를 터뜨리고 면역 공격 유발
- 알츠하이머 치매: 아밀로이드 침착과 만성 염증이 신경세포 타우 단백질을 손상
당화혈색소로 내 염증 상태 체크하기
건강검진을 받을 때 "내 몸의 염증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도 이 방법으로 제 몸 상태를 알게 됐고, 그게 생활습관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당화혈색소(HbA1c)는 원래 당뇨 진단 지표로 사용되는 수치입니다. 여기서 당화혈색소란 혈액 속 포도당이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달라붙은 비율을 측정하는 지표로, 최근 2~3개월간의 혈당 상태를 반영합니다. 일반적으로 5.7% 이하가 정상, 6.5% 이상이 당뇨 진단 기준입니다. 그런데 몸에 만성 염증이 누적되면 이 수치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제가 야근과 인스턴트 식단을 반복하던 시절, 이 수치가 6.1%까지 올랐습니다. 당뇨는 아니라는 말에 안심했지만, 6.0%를 넘으면 이미 대사 기능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라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정제 당류를 줄이고 수면 시간을 7시간 이상으로 확보하는 생활을 6개월간 이어갔더니, 수치가 5.5%로 내려오고 만성 피로와 가려움증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Harvard Medical School 연구에 따르면 지중해식 식단이 만성 염증 지표인 C-반응성 단백질(CRP) 수준을 유의미하게 낮춥니다(출처: Harvard Health Publishing). C-반응성 단백질(CRP)이란 간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로, 몸속 염증 반응이 활성화될수록 혈중 농도가 높아지는 염증 마커입니다. 올리브오일, 견과류, 채소 위주의 식단이 면역 과잉 반응을 조절한다는 점에서, 거창한 디톡스보다 식단 조절이 훨씬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주 150분 이상의 중강도 유산소 운동이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를 억제한다고 발표했습니다(출처: CDC - Physical Activity). 사이토카인(cytokine)이란 면역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을 때 분비하는 단백질로, 염증 반응의 강도를 조절하는 핵심 물질입니다. 운동이 이 사이토카인의 균형을 잡아준다는 의미입니다.
글림프 시스템, 잠이 염증 청소부인 이유
영양제에 관해서는 저도 한때 책상 서랍이 반쯤 영양제로 채워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시기에 몸 상태가 특별히 좋아진 기억이 없습니다. 의학적으로 영양제는 임산부, 만성질환자, 고령자처럼 식사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기 어려운 경우에 의미가 있고, 일반적인 직장인이 "혹시 도움이 될까 봐" 여러 종류를 동시에 먹는 건 약물 상호작용(DDI, Drug-Drug Interaction) 위험까지 감수하는 행동입니다. DDI란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이나 보충제를 함께 복용할 때 서로의 흡수·대사·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예측 불가능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디톡스에 대한 시각도 비슷합니다. 디톡스가 상술이라고 단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개념 자체가 의학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건강 추구 행동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극단적인 단식이나 영양 불균형을 유발하는 방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수면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건 제가 직접 경험으로 확인한 부분이라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뇌에는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는 청소 구조가 있습니다. 글림프 시스템이란 뇌척수액이 뇌 조직 사이를 순환하면서 신경세포 활동 중 생성된 노폐물, 특히 아밀로이드를 씻어내는 뇌 고유의 노폐물 처리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깊은 수면(비렘수면 3·4단계)에서만 본격적으로 활성화됩니다.
제가 수면 시간을 6시간 이하로 유지하던 시절에는 아무리 자도 개운하지 않은 날이 많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청소부가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잠을 나눠 자거나 얕은 잠만 자는 경우에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연구들은 7시간~7시간 반의 연속적인 수면이 글림프 시스템 활성화에 가장 유리하다고 제시합니다. 이보다 적어도, 많아도 건강 지표가 나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열이 났을 때 해열제를 먹고 출근하는 행동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발열은 호중구의 활동력을 높이기 위해 면역시스템이 체온 조절 중추에 직접 요청해 만들어내는 반응입니다. 몸이 스스로 싸울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인데, 해열제로 이를 억제하고 활동을 이어가면 면역 에너지가 분산됩니다. 3일이면 나을 감기가 2~3주를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염증을 없애는 영양제, 먹어도 괜찮을까요?
A. 노니, 타트체리, 고농축 프로폴리스처럼 항염 효과를 내세우는 영양제들은 약효를 입증하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효능이 없다고 증명된 것"이 아니라 "효능이 증명되지 않은 것"이라는 차이가 있는데, 저는 이 구분을 꽤 중요하게 봅니다. 한두 가지를 가볍게 먹는 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여러 종류를 동시에 복용하면 약물 상호작용 위험이 생기므로 주치의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건강검진에서 당화혈색소 6.0%가 나왔는데 당뇨는 아니라고 했어요. 괜찮은 건가요?
A. 당뇨 진단 기준인 6.5%보다 낮으니 당뇨는 아닙니다. 그러나 6.0%를 넘으면 대사 기능과 만성 염증 수준 모두 적신호 단계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구간에서 식단과 수면을 바꿨고, 수치가 5.5%로 내려오며 몸 상태가 달라졌습니다. 의사가 "당뇨 아님"에서 설명을 끝냈다면, 본인이 먼저 수치의 의미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글림프 시스템을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자야 하나요?
A.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연속적으로 자는 것, 그리고 깊은 수면 단계에 충분히 머무는 것입니다. 쪽잠을 여러 번 자거나 꿈을 많이 꾸는 얕은 수면만 반복되면 글림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7시간에서 7시간 반 정도를 일정한 시간에 자는 습관이 가장 기본이고, 잠들기 직전 강한 빛이나 과식을 피하는 것도 깊은 수면 진입에 도움이 됩니다.
Q.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GLP-1 약물이 염증도 줄여준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일부 연구에서 GLP-1 계열 약물이 염증 지표를 낮추고 심혈관 보호 효과를 보인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약물이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고, 췌장염·췌장암 위험처럼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부작용도 존재합니다. 비만이나 당뇨가 없는 분이 단순히 염증 개선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염증을 적으로만 보는 시각과, 그것을 없애주겠다는 각종 상품들 사이에서 정작 중요한 사실이 묻히곤 합니다. 염증은 우리 면역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이고, 그 시스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문제는 염증 자체가 아니라, 염증을 끊임없이 유발하는 생활습관이었습니다.
당화혈색소 수치 하나를 기준으로 삼고, 수면 시간을 7시간 이상으로 확보하고, 정제 당류와 과도한 포화지방을 줄이는 것. 거창한 디톡스나 검증되지 않은 영양제 세트보다 이 세 가지가 훨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만성 염증이 걱정된다면, 다음 건강검진에서 당화혈색소(HbA1c) 수치를 직접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