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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지기 전에 발견하면 생존율 99%, 터진 후에는 10% 미만.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복부 대동맥류는 아무런 통증도, 불편함도 없이 뱃속에서 조용히 자라다가 어느 순간 파열과 동시에 생명을 앗아가는 질환입니다. 제가 이 질환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 건,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이건 모르면 진짜 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뱃속의 시한폭탄, 복부 대동맥류란 무엇인가
복부 대동맥류(Abdominal Aortic Aneurysm, AAA)란, 심장에서 내려오는 가장 굵은 혈관인 대동맥이 복부 구간에서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질환입니다. 쉽게 말해, 오래된 수도관이 안쪽에서 압력을 못 이기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정상 복부 대동맥의 지름은 평균 2cm 내외인데, 이것이 4cm를 넘으면 추적 관찰을 시작하고, 6cm 이상이면 1년 내 파열 가능성이 15%까지 오릅니다. 8cm가 되면 그 확률은 50%로 치솟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환자가 증상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스스로 증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는 경우는 전체의 10%도 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90% 가까이는 전혀 다른 이유로 검사를 받다가, 혹은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식입니다. 제가 이 수치를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복부 대동맥류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는 흡연, 고혈압, 동맥경화, 고령이 꼽힙니다. 특히 50대 이상 흡연 남성에서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출처: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복부 대동맥 파열 및 박리 환자 수는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고령화와 생활습관 변화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 직경 4cm 이하: 파열 위험 낮음, 정기 추적 관찰
- 직경 5~6cm: 파열 위험 본격 증가 구간, 치료 시점 논의
- 직경 6cm 이상: 1년 내 파열 가능성 15%, 적극 치료 권고
- 직경 8cm 이상: 1년 내 파열 가능성 50%, 즉각 시술 필요
허리 디스크인 줄 알았는데, 혈관 문제였다
직접 겪어보니, 또는 주변 사례를 가까이서 지켜보니 이 질환에서 가장 안타까운 상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리 통증을 단순 디스크나 척추 협착으로 오인해 수년 동안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만 다니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복부 대동맥이나 하지 혈관이 막혀 다리에 혈류가 부족해지면, 이것이 마치 허리 디스크 통증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두 질환의 통증은 분명히 다른 패턴을 보입니다. 혈관 폐쇄로 인한 통증은 간헐적 파행증(Intermittent Claud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간헐적 파행증이란, 일정 거리를 걸을 때마다 다리에 통증이나 경련이 발생하고, 잠시 멈춰 쉬면 수분 내에 증상이 사라지는 패턴을 의미합니다. 핵심은 '일정함'입니다. 매번 비슷한 거리를 걸으면 아프고, 쉬면 낫고, 다시 걸으면 또 아픕니다.
반면 척추 질환에서 오는 통증은 훨씬 불규칙합니다. 어떤 날은 멀쩡하다가도, 특정 자세로 앉거나 눕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유발되기도 하고, 걷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저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 경험상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서 수년씩 잘못된 방향으로 치료를 받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리 통증이 걸을 때마다 규칙적으로 나타난다면, 반드시 혈관 쪽도 확인해봐야 합니다.
실제로 복부와 다리로 내려가는 장골동맥까지 혈전으로 꽉 막혀 다리 혈류가 40%밖에 되지 않았던 환자가, 수년 동안 척추 신경 치료만 받다 뒤늦게 복부 대동맥 폐쇄증(Aortoiliac Occlusive Disease) 진단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복부 대동맥 폐쇄증이란 복부 대동맥과 그 하부 혈관이 혈전이나 동맥경화 등으로 막혀 하지 혈류가 심각하게 저하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인조 혈관 치환술 이후 발목 혈류 수치가 40%에서 110~120%로 회복됐다는 결과는, 올바른 진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개복 수술 vs 스텐트 시술, 무엇이 다른가
복부 대동맥류나 복부 대동맥 폐쇄증 치료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배를 열고 막히거나 늘어난 혈관을 잘라낸 뒤 인조 혈관으로 교체하는 개복 수술, 다른 하나는 대퇴부에 가느다란 관을 넣어 혈관 안쪽에서 인조 혈관 스텐트 그라프트를 설치하는 혈관 내 시술입니다.
개복 수술은 내구성 면에서 검증된 방법이지만, 수술 중 대동맥을 완전히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심장과 신장에 상당한 부담을 줍니다. 신장은 혈류가 1시간 이상 차단되면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기능 손상이 발생할 수 있어, 수술팀은 신장 동맥 차단 시간을 최소화하는 정밀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수술 후에도 심근경색, 뇌혈관 합병증, 수술 부위 출혈 등의 위험이 수일간 지속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술 자체보다 수술 후 며칠이 더 위험한 고비라는 사실 말입니다.
반면 스텐트 그라프트(Stent Graft) 시술은 대퇴부에 작은 구멍만 내서 진행하기 때문에 감염 합병증 위험이 낮고 회복 속도가 빠릅니다. 스텐트 그라프트란, 금속 망사 구조의 스텐트 안쪽에 인조 혈관을 결합한 장치로, 혈관 안에서 펼쳐져 늘어난 대동맥 내벽에 밀착되어 피가 인조 혈관 안으로만 흐르게 만드는 원리입니다. 실제 국내 치료 경향을 보면 2020년 기준으로 복부 대동맥류 환자의 약 80%가 이 스텐트 그라프트 시술을 받았고, 개복 수술을 받은 경우는 20% 정도에 불과합니다(출처: 대한혈관외과학회).
다만 스텐트 시술이 모든 환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혈관의 굵기나 형태에 따라 적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혈관 구조가 까다로운 환자에게 개복 수술 없이 시술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혈관외과 발전의 핵심 방향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좁은 혈관도 포기하지 않는 더블 배럴 시술
일반적인 스텐트 그라프트 시술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인조 혈관 스텐트가 갈라지는 부위, 즉 대동맥이 양쪽 다리로 나뉘는 지점의 혈관 직경이 최소 18mm 이상이어야 합니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Y자 형태의 스텐트를 설치했을 때 한쪽 가지가 납작하게 눌려 다리 혈류가 막힐 위험이 생깁니다.
그런데 특정 부위만 늘어나는 형태의 복부 대동맥류 환자는 하부 혈관이 정상이거나 오히려 좁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환자에게는 기존 Y자형 스텐트를 쓸 수 없었고, 과거에는 불가피하게 개복 수술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케이스가 생각보다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환자들이 고령이거나 전신 상태가 좋지 않아 개복 수술 자체가 고위험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한계를 돌파한 것이 바로 더블 배럴(Double Barrel) 인조 혈관 스텐트 시술입니다. 더블 배럴 시술이란, Y자로 조립된 하나의 스텐트 대신 직경이 작은 스텐트 두 개를 양쪽 대퇴부에서 각각 삽입해 복부 대동맥 안에서 나란히 설치하는 방법입니다. 마치 총구가 두 개인 공기총처럼 두 관이 나란히 놓이는 형태입니다.
핵심은 두 스텐트가 서로 압착되지 않고 혈류를 균등하게 나눌 수 있도록 굵기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 복부 대동맥 직경의 약 80% 굵기 스텐트 두 개를 삽입했을 때 양쪽 혈류가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이 수학적 계산과 임상 실험을 통해 도출됐습니다. 이 연구는 논문으로 발표돼 기존 방법으로 치료할 수 없었던 환자군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제가 이 시술법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하나의 까다로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민하다가 얻어낸 공식이 결국 더 많은 환자를 구하는 기법으로 확장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복부 대동맥류는 어떤 검사로 발견할 수 있나요?
A. 복부 초음파 검사로 비교적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방사선 피폭 없이 혈관의 직경과 형태를 확인할 수 있어 50대 이상 흡연 남성에게 선별 검사로 권고됩니다. 더 정밀한 구조 파악이 필요하면 CT 혈관조영술을 추가로 시행하게 됩니다.
Q. 다리가 걸을 때만 아프면 혈관 문제인가요, 디스크인가요?
A. 걸을 때마다 규칙적으로 같은 부위가 아프고, 잠깐 쉬면 수분 내에 증상이 사라지는 패턴이라면 혈관 폐쇄로 인한 간헐적 파행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척추 질환은 자세에 따라 통증이 달라지고 쉬는 중에도 저림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패턴이 불규칙합니다. 확실한 감별을 위해 혈관외과를 방문해 하지 혈류 압력 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Q. 스텐트 시술을 받으면 평생 유지되나요?
A. 인조 혈관 스텐트 자체의 내구성은 합병증만 없으면 장기간 유지됩니다. 그러나 시술 이후 혈관 압력 변화로 스텐트 주위로 피가 새는 내루(Endoleak)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내루란 인조 혈관 바깥쪽으로 혈액이 계속 유입돼 대동맥류 내압이 유지되는 상태를 말하며, 이 경우 추가 시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술 후에도 정기적인 CT 추적 관찰은 필수입니다.
Q. 증상이 없으면 치료를 미뤄도 되지 않나요?
A. 오히려 반대입니다. 복부 대동맥류에서 통증이 생겼다는 것은 혈관이 곧 터질 수 있다는 위험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증상 상태에서 발견해 치료하면 생존율이 90% 이상이지만, 파열 후 치료는 생존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집니다. 증상이 없을 때 발견한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타이밍입니다.
결론
복부 대동맥류가 무서운 이유는 증상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증상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파열 전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90%를 훌쩍 넘지만, 파열 순간 현장에서 절반이, 응급실에서 또 절반이, 수술 중에 또 절반이 사망하는 현실은 조기 발견의 중요성을 수치로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질환일수록 본인이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50대 이상이고 흡연 경력이 있다면, 당장 다음 건강검진에서 복부 초음파 항목을 챙기시길 권합니다. 걸을 때마다 규칙적으로 다리가 아프다면, 정형외과보다 혈관외과를 먼저 방문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뱃속의 시한폭탄은 터지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이 질환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