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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단 13%에 불과합니다. 다른 주요 암들의 생존율이 꾸준히 올라가는 동안, 췌장암만 유독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너무 늦게 발견한다는 것. 제 친척분도 소화가 좀 안 된다며 위장약만 반년 넘게 드시다가 결국 췌장암 3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 글은 그 일 이후 제가 직접 찾아보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침묵의 신호 — 몸이 보내는 다섯 가지 경고
췌장은 위장 뒤쪽 깊숙이, 척추 바로 앞에 박혀 있습니다. 앞을 위·소장·대장이 빙 둘러싸고 있어 복부 초음파로도 가스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게다가 췌장에는 통증을 전달하는 감각 신경이 드뭅니다. 이 말은 종양이 한창 자라는 동안 아무런 통증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췌장은 정말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신호가 워낙 엉뚱한 곳에서 나타납니다. 제 친척분의 경우, 등 통증을 단순히 담이 걸린 것으로 여기고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만 받으셨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결국 골든타임을 그렇게 흘려보냈습니다.
췌장이 보내는 신호는 이렇게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 원인 불명의 가려움증: 피부에 발진도 없는데 온몸이 가렵다면 주목해야 합니다. 췌장 머리 부분의 종양이 담관을 막으면 담즙 속 빌리루빈(bilirubin)이 혈액 속으로 역류해 피부 신경을 자극합니다. 여기서 빌리루빈이란 간에서 생성되는 노란색 색소로, 정상적으로는 담즙을 타고 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황달이 오기 전 가려움증이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소변·대변 색 변화: 소변이 콜라색처럼 진해지거나 대변이 회색·흰 찰흙색으로 바뀐다면 담즙 흐름이 막혔다는 신호입니다. 정상적인 갈색 변은 빌리루빈이 음식물과 섞이면서 만들어지는데, 담관이 막히면 이 과정이 끊깁니다.
- 의도치 않은 체중 감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 6개월 안에 체중의 5% 이상이 빠졌다면 절대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췌장이 소화 효소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 영양분이 흡수되지 않고, 암세포가 근육 단백질까지 강제로 끌어다 씁니다.
- 갑작스러운 당뇨 발병: 췌장은 인슐린을 만드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암세포가 이 기능을 망가뜨리면 혈당이 갑자기 치솟습니다. 실제로 췌장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진단 당시 당뇨를 함께 앓고 있었으며, 혈당 이상은 췌장암 진단 2년 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국가암정보센터).
- 등·허리 통증: 종양이 커지면서 척추 앞 신경 뭉치를 누르면 통증이 등으로 뻗어 나갑니다. 똑바로 누우면 심해지고 앞으로 웅크리면 잠깐 나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파스와 물리치료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고위험군 —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착각
제가 친척분 일을 겪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분은 술도 거의 안 하시고 담배도 안 피우시는데 왜?"였습니다. 그래서 더 찾아봤습니다. 췌장암 고위험군은 생각보다 훨씬 넓습니다.
장기 흡연자는 비흡연자 대비 췌장암 발생 위험이 최대 2.2배 높습니다. 금연 후에도 위험은 수년간 지속됩니다. 만성 췌장염(chronic pancreatitis)이 있다면 위험도는 일반인의 수 배에 달합니다. 여기서 만성 췌장염이란 췌장에 지속적인 염증이 반복되면서 췌장 조직 자체가 서서히 망가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만성 췌장염의 80%는 음주가 원인입니다.
가족력도 중요합니다. 가족 중 췌장암 환자가 세 명 이상이면 위험도가 최대 32배까지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복부 비만. 지방 세포가 내뿜는 염증 물질이 췌장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에, 정상인보다 발생 위험이 최대 두 배 높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위험군이 이렇게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저는 매년 건강검진 때 담당 의사에게 췌장 관련 검사를 별도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정밀검사 — 일반 검진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저는 매년 건강검진 받으니까 괜찮겠죠?" 이 말이 가장 위험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 건강검진의 복부 초음파는 위장 가스에 가려 췌장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혈액 검사 항목 중 종양표지자인 CA19-9 수치는 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올라가기 때문에 조기 발견용으로는 신뢰도가 낮습니다. 여기서 CA19-9란 췌장암세포가 혈액 속으로 분비하는 단백질로, 암의 진행 정도를 추적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초기 스크리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할까요. 두 가지를 기억하시면 됩니다.
첫째는 복부 CT(Computed Tomography)입니다. 다만 일반 CT가 아니라 조영제를 사용하는 역동적 CT를 받아야 합니다. 역동적 CT란 조영제를 주입한 뒤 혈액이 흐르는 시간대에 맞춰 여러 번 촬영하는 방식으로, 초기 미세 종양과 주변 혈관 침범 여부까지 세밀하게 감별할 수 있습니다. 단순 CT와 달리 1~2cm 이하의 작은 종양도 잡아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둘째는 내시경 초음파(EUS, Endoscopic Ultrasound)입니다. 여기서 EUS란 내시경 끝에 초음파 장치를 부착해 위나 십이지장 벽 바로 너머에서 췌장을 직접 관찰하는 검사입니다. 외부에서 찍는 복부 초음파와는 달리 췌장 바로 옆에서 보기 때문에 초기 발견율이 현저히 높습니다(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제 경험상 이 두 검사는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고위험군이라면 반드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화불량이 오래 지속되면 췌장암 의심해야 하나요?
A. 소화불량 자체는 흔한 증상이지만, 위장약을 써도 3개월 이상 나아지지 않는다면 췌장을 포함한 정밀 검사를 고려해야 합니다. 제 친척분이 바로 이 경우였습니다. 위장 문제로만 생각하고 치료를 미루다 결국 3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원인 불명의 소화 장애가 지속된다면 소화기내과에서 췌장 쪽을 함께 살펴달라고 요청하는 게 현명합니다.
Q. 췌장암은 어느 부위에 생기느냐에 따라 증상이 다른가요?
A. 맞습니다. 췌장은 머리·몸통·꼬리로 나뉩니다. 머리 부분에 암이 생기면 담관을 비교적 일찍 막아 황달이나 가려움증이 먼저 나타납니다. 반면 몸통이나 꼬리 부분에 생기면 담관과 멀리 떨어져 있어 암이 상당히 커질 때까지 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발견이 늦어져 예후도 더 불량합니다.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병처럼 진행되는 셈입니다.
Q. 갑자기 당뇨가 생겼는데 췌장암과 연관이 있을 수 있나요?
A. 가족력도 없고 비만도 아닌데 60세 전후에 갑자기 당뇨가 생겼다면 단순 노인성 당뇨로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기존 당뇨 환자라도 혈당 조절이 갑자기 되지 않기 시작했다면 마찬가지입니다. 췌장암 연구에 따르면 혈당 이상은 췌장암 진단 평균 2년 전부터 시작됩니다. 내과 처방만 받지 말고 췌장 정밀 검사를 먼저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Q. 등이 자꾸 아픈데 정형외과 말고 어디를 가야 하나요?
A. 물리치료나 파스를 반복해도 나아지지 않는 등 통증, 특히 누우면 심해지고 앞으로 웅크리면 잠깐 줄어드는 패턴이라면 소화기내과나 내과에서 췌장 쪽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형외과에서 문제없다는 소견을 받은 뒤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반드시 췌장을 의심해 보셔야 합니다.
결론
췌장암이 무서운 건 아프기 때문이 아니라, 아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이 침묵하는 동안 암은 자라고, 신호가 나타날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제 친척분을 통해 그 현실을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내일 아침 화장실에서 변기 색을 한 번만 더 유심히 봐주세요. 이유 없이 체중이 빠지고 있지 않은지, 등이 이상하게 끊어질 듯 아프지 않은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세요.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위내시경이 아닌 복부 CT를 요청하십시오. 췌장암은 당신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