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들고 "지방간 있음"이라는 문구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주변에 워낙 흔한 얘기라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라며 서랍 속에 결과지를 밀어 넣었거든요. 그런데 공복 혈당 수치가 심상치 않아 정밀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제 간이 생각보다 훨씬 바쁘게 망가지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술도 거의 안 마시는데 왜 지방간이냐고요. 저도 처음엔 그게 제일 황당했습니다. 침묵의 장기, 간은 왜 아프다고 말하지 않을까간이 "침묵의 장기"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처음에 저는 그냥 의사들이 경각심을 주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나서는 이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 실감했습니다.간세포에는 통각 신경이 없습니다. 쉽게..
척수 변성이 한 번 시작되면 자연적으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꽤 오랫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목이 뻐근하고 손발이 저리는 증상은 워낙 흔하다 보니 대부분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넘기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 안에서 척수가 조금씩 손상되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경추 척수증은 목디스크와 초기 증상이 비슷하면서도 결과는 전혀 다른 질환입니다. 통증이 심하지 않아 방치되기 쉽고, 그게 가장 위험한 부분입니다. 목디스크와 경추 척수증, 뭐가 다른가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결리면서 팔이 저리면 십중팔구 "목디스크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같은 증상이라도 어떤 신경이 눌리느냐에 따라 질환의 성격 자체가 달라집니다.척추를 지나는 신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고지혈증 판정에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체중계 숫자는 늘 정상 범위였는데 말이죠. 알고 보니 이름도 생소한 '마른 비만' 진단이었습니다. 체중은 정상이지만 체지방률이 기준치를 넘고 근육량은 바닥을 치는 상태,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체지방률 정상인데 콜레스테롤이 높다고? 마른 비만의 정체처음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을 때 저는 솔직히 납득이 안 됐습니다. BMI(체질량지수)는 22로 정상이었고, 딱히 뚱뚱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여기서 BMI란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18.5~24.9 사이를 정상 범위로 봅니다. 문제는 이 수치가 체중 전체만 반영할 뿐, 그 안에 근육이 얼마나 있고 지방이 얼마나 숨어 ..
눈이 안 아프면 괜찮은 걸까요? 저는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당뇨 판정을 받은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눈은 그냥 좀 침침한 것 같기도 하고, 뭐 크게 불편하진 않다"입니다. 그런데 실명 직전까지 간 환자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증상이 없어서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당뇨망막병증은 초기에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습니다. 그게 가장 무서운 이유입니다. 당뇨 합병증이 눈을 망가뜨리는 방식당뇨망막병증(Diabetic Retinopathy)이란 높은 혈당이 망막의 미세혈관을 서서히 손상시켜 발생하는 눈 질환입니다. 여기서 망막이란 눈 가장 안쪽에 위치한 얇은 신경층으로, 카메라로 치면 필름에 해당합니다.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부위가 손상되면 시력이 돌아오지..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새겨지는지 모릅니다. 저도 처음엔 뇌졸중이 '갑자기 쓰러지는 병' 정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현장을 수없이 겪고 나니, 이 병의 본질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됐습니다. 뇌세포는 혈류가 끊기는 순간부터 분당 약 190만 개씩 파괴됩니다. 그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의 서늘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응급실 안에서 본 두 가지 시한폭탄뇌졸중(Stroke)이라는 말은 '뇌에 갑자기 생기는 중한 병'이라는 뜻인데, 사실 이 단어 하나 안에 전혀 다른 두 가지 질환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뇌출혈, 다른 하나는 뇌경색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판박이처럼 닮았는데, 치료 방향은 정반대라서 현장에서 처음 이 사실을 배웠을 때..
솔직히 저는 대장 내시경이 '불편하긴 해도 별일 없으면 안 받아도 되는 검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증상도 없이 지내다가 뒤늦게 용종 여러 개를 발견해 절제한 사례를 직접 목격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대장암은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까지는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습니다. 그게 이 암을 특히 무서운 이유입니다. 대장암 전조증상, 치질로 착각하면 생기는 일일반적으로 혈변이 보이면 치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실제 의료 데이터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전국 24개 병원 항문 출혈 환자를 조사한 결과, 90%는 치질 같은 항문 질환이 원인이었지만 4%는 대장암이나 진행성 선종으로 진단됐습니다. 100명 중 4명이 암이라는 건, 결코 ..